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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のづ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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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산도녀(산을 즐기는 도시 여자)」라는 말을 적지 않게 들어보셨을 겁니다. 「산」이라고 하면 남자들만의 세계...... 라는 것은 이제 옛날이야기. 야외 음악페스티벌 등을 계기로, 다양한 색상의 세련된 아웃도어 패션을 연출하면서 자연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힐링을 위해서, 혹은 건강과 에콜로지에 대한 관심에서인지 중노년층의 등산붐도 여전합니다. 자연이나 아웃도어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다양한 층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높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트레킹을 즐기는 젊은 여성들.

하지만 아름다운 대자연은 가끔씩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험준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들의 목숨을 지켜주고, 또 한 때의 휴식을 주는 것이 아웃도어 전용 웨어와 용품입니다.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 보다 더 꼼꼼히 성능을 따져야 합니다.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욱 가볍고 더욱 콤팩트하게, 그리고 되도록이면 더욱 쾌적하게. 이렇게 상반되는 테마를 실현하기 위해, 각 아웃도어 브랜드 제조사에서는 항상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으며, 또한 봉제와 디자인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독특한 기능미를 겸비함에 따라 요즘은 패션의 한 장르로서도 시민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웃도어 스포츠의 대부분은 원래 서양이 발상지지요. 그래서 역시 해외 브랜드가 강하다......? 아뇨,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실은 오사카에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일본회사가 있습니다. 회사명은 몽벨. 등산을 비롯하여 캠프, 카누, 낚시, 자전거 등 아웃도어 스포츠에 관한 것이라면 없는 게 없는, 세계에서도 굴지의 아웃도어 종합 브랜드입니다.

등산가의 시선으로

몽벨의 제조

오사카시 니시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일본 굴지의 아웃도어 브랜드・몽벨. 아웃도어 필드에 대해 전문가의 시선으로, 기능성・신뢰성・실용성이 높은 제품을 양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브랜드로서, 많은 아웃도어 팬들로 부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제품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는 미국과 스위스를 비롯해 한국과 중국, 대만, 싱가폴 등에서도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혹시 아직 모르시는 분은, 전국에 77개 점포(2013년 3월 현재)가 있는 몽벨스토어를 꼭 한번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점포 내부에 풍성하게 진열된 제품의 종류・양에 틀림없이 놀라실 겁니다. 다양한 필드와 기후에 대응하는 상의와 하의, 신발, 백팩, 텐트, 조리용구...... 이건 모두 아웃도어에서 「놀기」를 위한 것들. 이들을 만지면서 용도를 상상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올 것입니다.

몽벨 스토어 점포 내 :상품지식이 풍부한 스탭들이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상품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탄생된 걸까요? 몽벨의 창업자이자 저명한 등산가・모험가이기도 한 다츠노 이사무 회장께 질문해봤습니다.

공고산(金剛山)
에서 아이거 북벽까지

제조의 원점

오사카부 사카이 시의 한 초밥집에서 태어난 다츠노 씨.
후일 등산가 ・모험가가 되기까지의 첫걸음은 중학교 때 자주 다니던 공고산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요즘과는 달리 로프웨이를 비롯한 인공설치물이 거의 없는 곳이었으며, 근처에 사는 친구와 함께 계곡에 텐트를 치고 코펠에 밥을 해먹던 것이 지금까지도 인상에 남아 있단다.

다츠노 이사무 씨:1947년 오사카부 사카이시 출생. 세계의 강을 모험하는 카누이스트의 모습도.

「길이 없는 곳을 걸어다니는 게 즐거웠어요. 그때부터 누구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간 뒤에 길이 생긴다』라고 생각하는 타입이었죠.」물론 장비를 갖출만한 돈은 없었고「침낭은 담요를 꿰매 주머니처럼 만들어 가지고다니거나, 없는 것은 이것저것 연구해서 직접 만들어서 썼어요.」이때의 체험들이 후일의 다츠노 씨가 생각하는 제조의 원점이 된 것 같군요.

이런 다츠노 씨가 본격적으로 등산가의 길을 지향하게 된 계기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16세 때의 일. 오스트리아의 등산가 하인리히 하러가 난코스로 유명한 스위스의 아이거북벽을 처음으로 등반했을 때의 기록을 쓴 책 『하얀 거미』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나도 이곳에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한 다츠노 씨는 그 때부터 클라이밍 기술을 배워, 불과 6년 후인 1969년 21살 때 아이거북벽을 일본인으로서 두 번째로 등반에 성공합니다. 이는 당시 세계 최연소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업의 배경에는 역시 직접 본인이 연구해서 장비들을 만드는 다츠노 씨의 모습이 있답니다.

1969년, 아이거북벽 힌터슈토이서・트래버스에서 트레버스 중인 다츠노 씨.

「장비는 유럽에서 그당시의 최신 장비를 모았다고는 하나 요즘의 고어 텍스 같은 방수 투습성 소재 (* 1) 등은 아직 없었어요. 그래서 발수성 (* 2)이 있는 야케 (방풍복)을 두 겹으로 입고 도전했지요. 이렇게 하면 통풍기능은 있으니까 습기가 차지 않고, 겉에 입은 야케가 젖어도 안에 하나 더 입었으니까 괜찮았고요. 하루 입고 발수 성능이 떨어지면 안에 입고 있던 것을 밖으로 바꿔입으면 되거든요. (웃음) 」라는 다츠노 씨. 동시에 장비의 경량화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항상 연구하고 더 좋게 만들려고하는 그 정신이 후일 몽벨의 제조업으로 연결되었던 것이겠지요.

새로운 섬유와의 만남과

몽벨 설립

사실은 아이거북벽을 목표로 삼았던 16 세 때, 다츠노 씨는 동시에 또 하나의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은 28 세 때 뭔가 산에 관련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 그당시에는 산악 가이드 일이나 등산용품점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섬유상사에 취직했는데, 그 때의 어떤 만남이 몽벨을 창업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 만남이란 업무상 취급하게 된 「새로운」 화학 섬유와의 만남. 「예를 들어 미국의 듀퐁이라는 회사가 개발 한 섬유, 케블라와 노멕스. 케블라는 방탄조끼 등에 사용될 정도로 강인하며, 노멕스는 방화옷에 사용되는 타지 않는 섬유였습니다 (*). 이러한 소재를 사용하면 등산용품도 더욱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발상이 별로 없었을 때지요.」

16 세때 세운 결심대로 28 세의 나이에 섬유상사를 퇴직하고 오사카에서 몽벨을 설립. 「섬유에 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오사카가 중심지니까요. 섬유제조사의 본사도 가까이에 있어 개발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손쉽고요. 게다가 오사카 상인의 특성인 합리성을 중시하는 풍토도 저랑 맞았지요.」중고 싱어 재봉틀을 손에 넣어 자신의 생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샘플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창업당시의 재봉틀 제 1호기:현재는 몽벨 본사 쇼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츠노 씨는 아이거 북벽을 비롯한 그때까지의 등산 경험에서, 장비를 더 가볍게 만들어 움직이기가 편해진다면 더욱 안전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기능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더 가볍고 더 콤펙트하게, 그리고 젖어도 빨리 마르는 것 ―― 이것은 서양인 같은 체격을 타고나지 못 했으면서 기후가 다우 다습한 일본에 사는, 일본인 특유의 발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몽벨의 우비는 미국에서 경이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에는 그렇게 「가벼운」우비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놀람을 가져서 맞이할 수 있었던 초기의 우비

「필요한 것을 만든다」

몽벨의 제조

「우리들의 제조는 항상『무엇이 잘 팔릴까?가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가?』부터 시작됩니다」라고 다츠노 씨는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 판매하고 있었던 태양열 충전기는 자신이 티베트와 네팔에서 곤란한 경험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나처럼 곤란한 경험을 한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에 100개도 안 팔릴지도 모른다. 참고로, 최소거래단위는 2000 개로, 이걸 다 팔려면 20 년은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제조사로서의 매력이지요. 상품의 가치가 팔리는 숫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만들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제조의 원점」

이러한 자세는 다츠노 씨가 혼자 몽벨을 설립한 이래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1년에 몇 번씩 열리는 기획회의 때는 기획부 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도 희망자는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몽벨 직원들은 거의 모두가 아웃도어 애호가이며, 각자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 실제로 여기서 히트한 제품도 많이 나왔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어 실린 몽벨 카​​탈로그를 보시면, 그런 자유로운 회사기풍이 쉽게 상상이 되실 겁니다.

사내 기획회의 모습:필드 내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제품에 반영됩니다.

그런데 몽벨의 라인업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야외 다도세트」도 다츠노 씨의 장난기에서 비롯된 것. 「집 안에 다실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차를 즐겨야 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산에서도 차를 끓여먹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콤팩트 한 휴대용 다도세트를 고안해 냈다고 한다.

야외 다도세트: 총 중량 305g. 해외 분들에게 주는 선물로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자연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

물론 물건을 만들어 팔면 끝, 이 아니라고 다츠노 씨는 말합니다. 「결국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은 거예요.」 원래 산악 가이드를 꿈꾸었으며, 1970 년에는 일본 최초의 등산 학교를 만든 경험도 있습니다. 「산길을 걸어가다가, 드디어 고개를 넘는다. 함께 동행한 손님이 저 너머에 펼쳐지는 경치를 바라볼 때 보여주는 그 표정들 ...... 정말 최고예요. 」

이렇게 즐거운 경험은 분명 직원들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몽벨·아웃도어 챌린지라는 야외활동 부문을 설립. 현재 전국의 몽벨 스토어에서는 직원들이 각자 자신들이 데려가고 싶은 곳의 기획을 짜서, 수시로 투어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경영자 입장으로 보면 이런건 안하는 게 좋아요. 하지만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지요.」 직원 1200명이 다니는 기업의 회장이면서 지금도 1년에 5 ~ 6 회는 스스로 여행 가이드를 맡고 있단다. 단골 손님이 많아 모집하자마자 정원이 금새 꽉 차 버린답니다.

몽벨・아웃도어・챌린지에서는, 전국의 몽벨 스토어를 거점으로 투어를 개최.

이러한 몽벨의 자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몽벨 클럽」의 회원도 이제 곧 40 만명 (2013 년 3 월 현재)에 가까워졌습니다. 「몽벨 클럽의 연회비는 1500 엔. 이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동료』들이 약 40 만 명 있어요. 정말 대단한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가가 유권자에게 받는 한 표보다 무거운 것이라고 저희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회비의 일부는 자연보호 활동과 장애인스포츠 지원, 최근에는 동일본 대지진 복구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패해지에서는, 아웃도어의 경험을 살린 재해지원 활동을 했습니다.

제조는 계속된다

창업한 지 38 년, 몽벨이 취급하고 있는 상품은 이미 수천 종류가 충분히 넘었습니다. 그러나 더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고 다츠노 씨는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번에 감명받은 것이 있는데, 그건 발전(発電)할 수 장작 스토브. 이러한 것은 우리의 생활을 바꿔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미 아웃도어라는 장르를 넘어버렸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지금은 40 만명이다. 앞으로 100 만명, 200 만명이 되었을 때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라는 기대를 몰래 해봅니다.」

앞으로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자연』에 대한 의식이 높아질 것이고, 그 때를 위해서라도 일본의 자연과 공생하는 우리의 스타일이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는 다츠노 씨. 앞으로도 몽벨의 제조는 더욱 널리 확산되어 갈 것 같습니다.